너는 누구보다 잘 알았지
마치 심해를 헤엄치는 고래 같았어
가끔은 완벽한 거짓 웃음 뒤에서
차가운 정적 속에 숨을 고르곤 해
대도시의 소란함은 속절없고
너는 죽은 물고기의 눈으로 하루살이 우주를 헤엄쳐
하지만 그저 들판을 걷다 보면
처음 깨닫는 것도 있어
내가 무심코 걷다가
금방 밟아버릴 것 같은 발밑에 있던
이 작은 식물의 바람에 흔들리는 오묘한 음영이야말로
나를 나답게 만드는 인력의 증거였어
만약 네가 없었다면
이 우주는 그저 공허하고
끝없이 넓어서
오직 맑은 하늘만 있었겠지
그곳으로 떨어져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어
하지만 난 이렇게 너를 찾아내고 말았어
진흙투성이로 발버둥 치는 뿌리를 흙 속에 숨기고
금방 사라질 듯한 미소로 피어있는
들판에 핀 한 송이 꽃
이 황폐해져 버린
어디에도 구원 없는 세상에서
설령 한밤중 흩어진 별들의 속삭임이나
마땅히 계셔야 할 신의 본모습조차
네가 있었다는 걸 잊어버린다 해도
그 작고 작은 꽃잎 한 장 한 장이
자연계에서 부조리하게 쌓여가는 풍설을 견뎌내며
지금껏 괴로워하며 살아온 모든 노력이
비록 예쁜 글자들로 채워져야 할
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해도
오히려 잘 눈여겨보면
누군가에게 이미 짓밟힌 자국이 남아있다 해도
나는 그 생명의 무게마저 무엇보다 소중히 여겨
만약 사랑이라는 그 낡은 상투적인 말이
무의미해질 만큼의 거리감이 있어도
설령 그 어디에나 있는 가족들처럼
빛의 속도보다 빨리 만날 수는 없다 해도
사실 너의 모습을 온화하게 감싸주고 있던
그 눈부신 축복의 햇살 속에서
이 마음들이 무지갯빛으로 변해 섞일 수만 있다면
온갖 화려한 계절이 다 지나가 버린 뒤에
만약 이제 누구라도 이 기적을 잊어버린다 해도
나는 분명 너라는 존재가
확실히 머금고 있던 이 손바닥의 온기를
다시 이곳으로 찾으러 올 생각이야